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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VEL/체코슬로바키아

체코슬로바키아

 

체코의 프라하​(Praha)

​ 프라하는 "백탑의 도시" "유럽의 음악 도시" "알프스 북쪽에 있는 로마" 등으로 불린다.
 보헤미아왕국의 ​수도로1,000년 이상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프라하는 고딕,르네상스,바로크,로코코 등의 건축양식들이 다양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블타바 강 우안의 구시가지와 좌안언덕위에 우뚝 세워진 프라하성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렐교가 연결해ㅔ 주고 있다.
주변 강대국​의 침략을 수차례 받았음에도 프라하 시민들은 현명하게 그들과 정면으로 싸우는 대신 그들의 지배를 받는 것을 택하여 아름다운 옛도시의 모습을 간직할수 있었다.
1989년에 유적지 12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되면서 매년 수 많은 관광객이 찾고있다.
프라하는 체코어오 Praha, 영어로는 Prague로 표기한다.



 






 

화약탑 (Prasna brana)

​    1475년에 세워진 65m높이의 고딕양식 건축물로 구시가지를 방어하는 13개의 성문중 하나였다.

    시민회관 자리(옛 왕궁)에 있었던 왕궁이 프라하 성으로이전한 뒤에 이분이 방치 되었었다.​







 






























 

틴 성모 교회(Kostel Panny Marie Pred Tynem)

  1365년 고딕양식으로 개축된 틴 성모교회는 성비투스 성당과 더불어 프라하에서 가장 대표적인 교회 실내는 바로크 양식으로 꾸며져 있다.후스전쟁후 400년간 후스파의 거점 교회로서 부패한 카톨릭 교회를 부정하고 종교개혁을 실천했던 곳 이기도 하다.

광장​​뒤쪽에는 80m의 쌍탑이 우뚝 솟아 있고 2기가의 첨탑사이에는 후스파의 상징인 황금성배를 녹여 만든 마리아상이 있다.






 


 

시가광장(Staromestske Namesti)

  중세에 건축된 고딕,르네상스,비로크,로코코양식의 건물들로 둘러싸인 광장,10세기 부터 블타바 강 우안에 유럽 상업로 십자로에 서 있는 시장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함스부르크 시대에는 사형집행소가 세워 졌는데,지금은 시청 앞 타일에 십자가로 표시되어 있다.





 

 

구시청사와 천문시계

​  1,338년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구 시청사는 2차대전시 일부 소실되었으나 시계탑 서쪽에 다섯 동의 건축물이 남아 있다.
특히벽면에 있는 천문시계(오를로이)는 체코 고딕시대의 과학과 기술의 결정판 이라고 말할정도로 유면하다.
시청직원은 이시계를 만든 장인이 다른곳에서 이와 똑 같은 시계를 만들지 못하도록 장님으로 만들었다 한다,
프라하의 역사를 새긴 천문시계는 거의 원형 그대로 600 여년동안 보전되어 있다.​





 

천문시계







줄을 당겨 왼손의 모래시계를 거꾸로 놓으면 맨위의 창이 열리면서

 12명의 그리스도 사도가 등장해 각자 한 바퀴 돌면서 닭이 울고 종이 울린다.







 

 






 

성 미쿨라세 교회(Kostel Svateho Mikulase)

   프라하에​ 두 개의 성 미쿨라세 교회가 있다.
딘첸호퍼가 말라스트라나에 세운  성 미쿨라세 성당(카톨릭 성당) 과 그의 아들 킬리안 단첸호퍼가 구시가지에 세운 성 미쿨라세 교회(개신교 교회)이다.​




 

 

틴 성모교회 (Kostel Panny Marie Pred Tynem)

  1365년​ 고딕 양식으로 개축된 성모교회는 성 비투스 성당과 더불어 프라하에서 가장 대표적인 교회, 실내에는 바로크 양식으로 꾸며져 있다.





 


첼레나 거리(Celetna ulice)








 

마침 구시청사의 천문시계탑 아래에서 방금 결혼 후 기념촬영 하는것을 촬영했는바







 


얀후스 군상(Pomnik Jana Husa)







 






 

틴 성모교회






 


멀리서 본 구시청사 및 천문시계탑의 모습







 






 





 





 





 





 

까를교 중간에 있는 상 만지면 복이 온다하여





 

존레논 벽화


영국의 대표적인 그룹 비틀즈
존레논은 부인의 영향을 받아 사회운동가 였는데, 당시 공산주의였던 체코인들을 대신해 존레논이 자유를 말해주며 , 체코인들은 자유에대한 열망을 가졌다고 함.

이와중에 존레논이 광팬의 총에맞아 , 사람들이 벽에 자유를 썼다고 하는데
이벽은 부실수 없는 벽이라 함.
그래서 매년 자주 글들을 지우지만 사람들이 와서 계속 이렇게 글을 써서 없어질 날이 없다고함.







 





 






 

체코의 코스트니체 세드렉 성당





 

해골성당(코스트니체 세드렉 성당) 내부


슈바르젠 바르그 가문의 남작은 대저택을 짓기 위해 장소를 물색 중 버려진 수도월을 발견했고 이를 허무는 과정에서 지하실에
묻혀있던 해골들을 발견하는데 그 수만 4만 구 정도가 되었다고 함.
14세기에 흑사병과, 후스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묻을 토지가 없어 수도사가 지하에 보관하기 시작했다고..
그 수도사가 남긴 편지에는 "훗날 누가 이 해골들을 발견하면 가볍게 여기지 말아달라. 불쌍히 떠난 사람들이다.
따뜻한 곳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도와달라. 늙은 수도사의 마지막 부탁이다"라는 말을 남겼고,
그것을 본 남작이 대저택 대신 성당을 짓기로 결심했고 유명한 조각가에게

그 해골들로 성당을 꾸며줄 것을 부탁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함.







 

까를교에 길거리 연주하는 모습들





 

까를교 끝단의 풍경들





 

카를교는 프라하성과 구시가를 오가는 시간여행의 통로다.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로 1000년 세월을 간직한 프라하는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성 얀 네포무츠키(Jan Nepomucký, John of Nepomuk) 신부상.


순교 장면 부조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던가,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얘기가 있어서 사람들이 줄서서 만짐

그래서 그 부분이 만질만질





 






 






 

 

 

 

 

 

 

 

 

 

 

 

 







까를교에서 본 블타바강 상류 방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