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여행
이태리!
그중에도 뽐빼이(pompeii)란 오래된 역사의 도시를 방문
화산속에 파묻혀버린 도시를 다시 이러한 모습으로 재건했다.
기원전 8세기 부터 휴양지로 도시가 형성된 뽐빼이 로마인 들의 화려하며 풍요로운 생활상을 볼수 있는 그곳
베수비오 화산이 폭팔하면서 그 한순간에 화산재로 덮어져 멸망한 도시 뽐빼이
2000년전의 높은 수준의 생활상을 짐작할수 있을정도로 너무도 유명한 그 도시 뽐빼이를 다녀왔다.
늘 인류는 흥하고 망하고 망하면 또 흥하는 자연의 법칙을 큰차원에서 느끼고 온 이태리의 뽐빼이
가고 싶었고 느끼고 싶었던 그곳 뽐빼이를 소개하고져 한다.
2017.2.18~26 일 여행시
뽐빼이 유적지 초입 부분
대중 목욕탕의 모습들
공회장 주변에서 바라다 본 재우스 신전 뒷쪽에 보이는 산이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구가 보인다.
요즘으로 말하면 권투시합전 서로간의 주먹을 맞대고 누가 이길지에 대한 강력한 자기표현의 포스터와 같은 검투사들의 모습들
늘 검투사 들은 싸움을 하기전에 신에게 이번 경기만은 제가 이기겠노라고 신에게 두손모아 기도 하는 곳이라함
검투사들은 한번의 싸움에 목숨을 잃고 마는 결정적 운명의 싸움일뿐 이었다.
소랜토(SORRENTO)
나폴리 항구
트레비 분수
로마의 가장 아름다운 트레비 분수로마에서 가장 멋진 분수로 손 꼽히는 트래비 분수는 로마를 찾은 여행자들이 한번씩 동전을 던져보는 최고의 명소다. 분수 설계 공모전에서 뽑힌 니콜라 살비의 설계로 1762년 만들어졌다. 트레비 분수는 하나의 원석만을 깎아서 만들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자아낸다. 분수에 새겨진 조각들과 주변 배경이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다. 특히 트레비 분수에는 세계 각지의 동전들로 가득한데, 이는 예전부터 트레비 분수에 대한 속설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분수를 등지고 왼쪽 어깨 너머로 동전을 던지는 건데, 한 번은 다시 로마에 돌아온다는 의미, 두 번은 평생의 연인을 만날 수 있다는 의미, 세 번은 연인과 헤어진다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는 속설이다.
중앙에는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이 있고 양쪽에 말을 잡고 있는 두명의 신은 포세이돈의 아들인 '트리톤'이다.
분수 좌측에 날뛰는 말은 풍랑을 상징하고 오른쪽의 말은 고요한 물을 상징한다 라고 한다.
마침 당일 방문시는 동전을 던진것을 석달만에 수거 하는 날이다.
수거하는 이의 노고가 보이는 장면
판테온 신전
판테온에는 총 16개의 기둥이 있다.
판테온(Pantheon)은 모든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신전이다.
기원전 27년에 만든것으로 신전으로 사용되다가 화재를 입어 약 120년대 쯤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 되었다함.
7세기 이후부터 성당으로 사용되었다 함.
판테온 신전을 나오면 이집트 여신인 이지스 신전의 오벨리스크가 있는 로톤다(Rotonda) 광장이 있다.
빛이좋아 빛을 찍다보니 웬 분이....
콜로세움
서기 70년경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 서기80년 아들인 티투스 황제때 완공 벽돌과 콘크리트로 짛어졌다 한다.
100만개의 벽돌이 사용되었으며 석회와 물 화산재를 섞어서 강력한 접착성분의 시멘트를 만들었다 한다.
로마 스페인 계단
스페인 과장은 로마내에서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로 발딛을틈도 없는 만남의 장소 이다.
"로마의 휴일" 이란 오드리햅번이 등장하는 영화속 장면도 바로 이곳에서 촬영하리만큼
유명한 명소이기도 하다.
스페인 계단은 17세기 트리니타 데이 몬티의 프랑스인 주민들이 교회와
스페인 광장을 계단으로 연결시키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
그 오드리 햅번이 앉았던 따끈한 계단의 돌위를 앉아
로마의 휴일을 생각해 본다.
삼위일체 성당(Trinita dei Monti)
진실의 입
얼굴 앞면을 둥글게 새긴 대리석 가면으로, 지름은 1.5m 정도이다. 기원전 4세기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다. 강의 신 홀르비오의 얼굴을 조각한 것인데, 이 조각상이 진실과 거짓을 심판하는 '진실의 입'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다.
로마시대에는 가축시장의 하수도 뚜껑으로 사용되었다고도 하는데, 확인되지 않는다. 중세 때부터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사람을 심문할 때 심문을 받는 사람의 손을 입 안에 넣고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손이 잘릴 것을 서약하게 한 데서 '진실의 입'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진실을 말하더라도 심문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손을 자르도록 미리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고 한다.
진실의 입이 있는 보카델라베리타광장의 '보카'는 '입', '베리타'는 '진실'을 뜻하는 것으로 미루어 광장 이름도 진실의 입에서 유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마리가(街) 산타마리아델라교회 입구의 한쪽 벽면에 있으며, 거짓말을 한 사람이 입 안에 손을 집어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포로 로마노
로마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 포로 로마노포럼(Forum)의 어원인 '포로(Foro)'는 공공 광장을 뜻하는 말로, 포로 로마노는 '로마인의 광장'이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 시대 정치, 종교뿐만 아니라 일상의 주 무대였던 이곳은 팔라티노와 캄피돌리오 언덕 사이에 위치해 있다. 웅장한 공회당과 신전, 상점, 목욕탕, 도서관 등 모든 분야에서 로마 시민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이곳은 19세기 후반부터 발굴되기 시작했다. 로마제국 2500여년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유적지이며, 현재도 계속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콜로세움과 카피톨 언덕 사이에 위치한 고대 로마의 중심지 포로로마노 전경
바티칸 박물관
바티칸 궁전
베드로 성인의 조각상
입구에 바티칸을 지키는 무사들의 늠름한 위용
마침 바티칸을 방문하는 동안 본당에서는 어느 의식이 있는듯...
너무도 많이 보아왔던 조각상
성모님이 힘들어 지친 자기의 아들 예수를 보며 그 깊은 사랑의 눈길을...
오르비에토
이태리 여행중 가장 인상 깊었고,좋았으며
가장 사진적 요소가 많았던 오르비에토
다시한번 개인적으로 며칠 그곳에서 작품을 담았으면 하는 생각이...
오르비에토 가는길 버스 차창에 비치는 오르비에토
마침 두오모 성당 앞에서 독서에 열중이신 할아버의 진지한 모습
오르비에토를 올라가려면 "후니쿠라"란 이동기차를 타야 한다.
후니쿠라를 기다리는 이들...
유럽은 도시가 곧 역사이다.
걷는 보도브럭 부터 건물의 벽면, 또한 건물의 아기자기하며
크라식한 오래된 건물들
우리네 처럼 뚝딱 짛어서 바로 사용하는 식이 아닌
오래도록 견실히 짛어 오래 보전하자는 그네들의 사고방식
골목 하나하나를 돌면 또 하나의 역사가 나온다.
건축 초기시절 부터 살아왔던 이들은 이미 하늘나라에 있겠지만
그 후세들은 그 선조의 건물들을 지금도 반질반질 하게 잘 보존하며 살아가는 이들...
유럽은 어딜가도 아침 빛이 너무도 좋다
금번 이태리 여행에서 느꼈었던것 하나
빛이 좋으니 사진이 된다는거...
정겨운 골목
누군가 만날수 있다는 예감
혹씨 중세 시대의 당대의 사람들도 만날수 있었으면...
이렇듯 아침 빛이 찬란하다.
빛이 있으니 사진은 성립이 되누나
길가에서 만난 할아버지
너무도 인자한 미소가 여행후 에도 긴 여운을 준다.
두모오 성당앞에서 단체행사를 했었던 사진을 이방인에게 보여주며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밝은 빛과 할아버지의 수염이 너무도 닮아 있었다.
인도인 들은 이렇게 조용한 곳에
떠오르는 아침빛을 향하여 요가를 한다
너무도 진지하여 내가 다가감도 느끼지 못한듯...
피렌체 두모어 성당[ Florence Cathedral ]
두모어 대성당 내부모습들
시뇨리아 광장[ Piazza della Signoria ]
수세기 동안 피렌체의 정치·사회적 중심지였으며, 현재는 카페 테라스가 있는 휴게장소이다.
광장 부근 베키오 궁전에 있는 종루의 종은 시민들을 공공집회에 불러모으는 데 사용되었다.
광장에는 피렌체를 일으킨 코지모 데 메디치의 동상이 있고,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동상 《다비드》의 모조품과 메두사의 목을 벤 페르세우스의 청동상인 《첼리니의 페르세우스》, 잠볼로냐의 《사빈 여인의 강간》 등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 모조품들이 있다. 광장 중앙에는 한때 피렌체를 지배했던 수도승 사보나롤라의 처형지임을 알리는 화강암이 서 있다.
베키오 다리
아르노강 위의 다리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1345년에 건설되었으며 로마시대의 마지막 다리로 알려져 있다.
1944년 연합군의 추격을 받던 독일군이 강 양쪽 기슭의 집을 모두 파괴했으나 베키오 다리만 남겨두었다고 한다.
원래 이 다리에는 푸줏간, 대장간, 가죽 처리장 등이 있었는데
1593년에 페르디난도 1세가 시끄럽고 악취가 난다며 모두 추방하였고 대신 금세공업자들이 다리 위의 상점에 세들었다.
이후로 지금까지 베키오 다리의 금세공 상점들은 다양한 보석을 판매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판매하는 수공예 제품들은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안토니오 비발디의 생가
마침 이곳을 방문했을시 그네들이 좋아하는 가면 무도회가 여러 거리에서 열렸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