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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보스니아!


메주고리예[Medugorje ]


두브로브니크 에서 이곳 메주고리예 까지 차로 3시간 30분 걸려

성모발현으로 세계에서 주목 받고 있는 성 야곱성당,평화의 성모상을 방문




    

무릎의 작은 구멍에서 물이 흘러나와 이것을 젹서서 아픈곳에 대면 낫는다는 이야기가 있는 치유의 청동 예수님상

조그만 수건을 사서 흐르지는 않았지만 작은구멍에 대고  뭍여 왔다.











메주고리예는 슬라브어로 "산과 산 사이의 지역" 이라는 뜻으로 실제로 해발 200M 높이의

산악에 위치하고 있으며,전체 인구가 약 4,300여명 된다 한다.

1981년 6월에 6명의 아이들이 마을 외곽의 크르니카 라는 언억 위에서 성모 마리아님을 보았다고 주장해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되면서 카톨릭 신자들의 성지 순례지로서 너무도 잘 알려진곳 이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 에서는 성지로 검토중에 있으며 아직 까지도 성지로 인정을 하지 않고 있다.






















야외성당으로 미사준비를 하러 가시는 수녀님 들의 바쁜 발걸음을 따랐다.












메주고리예 성당 뒷쪽으로 이동하자 야외성당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 신자들이 본 성당에 봉헌한 흔적이 보여 너무도 반가웠다.

우리의 한글을 여기서 보았다.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서남부에 위치한 가톨릭 교회 소교구(小敎區), 메주고리예의 교회. 처음 교회가 들어선 것은 1897년이지만 지반이 약해 무너지고, 2차 대전 후 다시 짓기 시작하여 1969년 1월 19일에 완공되었다.


메주고리예 교구민들은 물론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와 기도하는 지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1981년 이곳의 여섯 아이들이 성모 마리아를 보았다는 성모 발현 기적 이후로,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순례자들을 위해 밤낮으로 미사가 열리며, 여름에는 야외 제단에서 미사가  열린다. 교회 입구 광장에는 조각가 디노 펠리치(Dino Felici)의 작품인 평화의 성모상이 서 있다. 왼쪽에는 ‘고해성사의 사도’, ‘일치의 사도’로 불리는 성인 레오폴도 만딕(St. Leopold Bogdan Mandic)의 상이 위치하고 있다. 성당 오른쪽 광장에는 커다란 나무 십자가 주위로 기도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본당 내부 모습들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였으며 보스니아 내전의 상흔이 생생한 모스타르로 이동

모스타르의 심볼,1993년 내전의 폭격으로 파괴된 다리를 헝가리의 잠수부들이 강물에 매몰된 파편들을 건져올려 터키의 건축가들이 1088개의 돌을 재배치하여 2004년에 재건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된 의미있는 다리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

모스타르란 뜻은 오래된 다리라는 뜻이다.헤르체고비나의 수도였으며 네레트바강이 흐르고 있는 이곳







모스타르 다리 입구부분에 "잊지말자 1993년"을 이란 글귀가 아마도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듯

부서진 건물,벽에 남은 총탄자욱,그리고 실종자를 찾는 벽보까지 보스니아 내전의 상처가 몇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내곳곳에 남아 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자기네 나라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취지에

" DON'T FORGET 93 " 이라는 문구가 시내 곳곳에 있다.













모스타르 가는길의 길가에 집에 보스니아 내전으로 인한 전쟁의 상처들이 가득한 자욱이 예쁜 꽃들과 비유되어...






매력적으로 깔린 돌길을 따라 구시가지 이곳 저곳을 본다.






















































































유럽에서 가장 동양적인 도시니자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로  이동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된 비극의 현장 라틴다리

1908년 보스니아를 강제로 합병한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사라예보에서 열리는 군대사열식에 참석하는바 오픈카를 타고 위 라틴다리 위를 천천히 지나던중

19세의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 였던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쏜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고 만다.







이 발칸지역은 영토확장을 호시탐탐 노리던 주변의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가장 좋은 먹잇감 이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오스트리아 제국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만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제1차 세계대전이 이곳 라틴다리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시청사 (VIJECNICA)

모로코 양식의 건물이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에는 도서관으로 사용되었다.1992년 불꽃에 휩싸여 그 이후에 보수를 하였다.


















우리의 반기문 총장께서 이곳을 방문 하셨을시  머물렀던 호텔












보스니아 정교회 이다.

이 건물은 1868년에 준공된 뉴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로 성당 앞에는 조그만 공원이 있다.

특이한 점은 신자들이 서서 미사를 본다는것 이다.











신,구시가지의 전체를 다 볼수 있는 안내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동상이 세워졌다.







거리 초입의 사라예보 로마 카톨릭 대성당.
보스니아에서 가장 큰 카톨릭 성당이다



























구시가지의 풍경들







바슈카르지아 광장.

사라예보 구청사를 뒤로하고 계속 걸으면 바슈카르지아 광장이 나온다.

바슈카르지아란 뜻은 현자말로 "중앙시장" 이란 뜻을 지녔다.

바슈카르지아의 크기는 구시가지의 90%에 해당되는 크기이기도 하며 너무도 비둘기가 많아 약간은 지저분한 느낌 이었으며

양옆에는 우리의 인사동 골목과도 같은 느낌의 기념품 가게와 작은식당과 까페가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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